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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하지 못한 날도, 나의 일부였다

by 시고르레코드 2025. 5. 24.
내 다이어리 속 공백이 말해주는 것들

고양이들이 아파서 밤샜던 한주 ㅠㅠ 내기록 텅텅이

1. 아무것도 쓰지 못한 날,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다이어리를 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날들이 있다.

퇴근하고 꼭 쓰겠다고 다짐하지만, 일에 치여 삶에 치여 그런 다짐들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잠들어버리는 일상들 말이다.

 

그런날들이 이유조차 모른채 하루가 흘러가는 것을 막고자 기록을 하기로 다짐했었는데 말이다.

 

그러다 문득 다이어리를 펼치면, 하얗게 비어 있는 페이지가 나를 마주 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중얼인다.

 

“또 실패했어.”

 

하지만 정말 그럴까? 기록하지 못한 날은 사라진 걸까?

우리가 아무 말도 적지 못한 그 하루에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걸까?

 

심리학자들은 종종 말한다.

“자신이 세운 기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모든 걸 실패로 간주한다”고. 하지만 다이어리는 성적표도, 숙제도 아니다.

그날을 온전히 담아야만 비로소 의미 있는 것도 아니다.

 

나도 어느순간 매일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몸살이 나도 펜을 들어 일기를 쓰곤 했는데

그런 어리석은 나를 보며 나는 무엇을 위해 일기를 쓰고 기록을 하고자 했는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연 비어있다고 기록하지 못했다고 하여 그날의 내가 없진 않았을테니 말이다.

 

어쩌면 기록하지 못한 날은, 내가 더 많이 버텼던 날일지도 모른다.

말로 풀지 못할 만큼 고단했던 하루. 그 자체로 충분한 하나의 ‘기록’인 것이다.

 

 


 

2. 빈 페이지는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이어리 속 공백을 자주 ‘흠’이라 여긴다.

그래서 비어있는 날들이 많아지면 새해에 다짐했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내 다이어리는 항상

책상 저편에 먼지가 쌓여가며 한해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마무리 되지 못한 다이어리들이 몇권째이며 새로운 다이어리로 시작해보려는 나는 몇명째인것일까

그래서 나는 형식에 얽메이지 않도록 다이어리를 무선노트에 작성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날짜가 새겨져 있으면 그 날에 비어져 있는 걸 못보는 걸 너무 잘아는 나이기에 내가 기록하고 싶을때마다

글을 쓰려고 선택한 방법이다.

 

만년형 다이어리를 쓰게 되면 내 성격상 하루를 쓰지 못했다면

마치 하루쯤 빠졌다고 전체다가 무너진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빈 페이지는 결코 나를 비난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저 말없이 기다릴 뿐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날이 있다.

너무 많은 일이 몰아쳐서, 무언가를 쓰기엔 감정이 너무 복잡해서, 혹은 그냥,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날은 글 대신 공백이 그 자리를 채운다.

정말 너무 힘들면 아무생각도 들지 않고 기계처럼 일하거나 공부하거나 그렇게 되는 것처럼.....

그리고 그 공백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날의 나는, 잠시 멈추고 싶었어.” 빈 페이지는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쉼의 기록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쉼이라는 것에 대해 죄책감아닌 죄책감을 상당히 많이 느끼는 것같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고 개인적으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

 

쉬는날에는 쉬기만 하면 안되고 무언가를 꼭 해야 알차게 보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래야

다이어리에 기록할 것이 생겨 펜을 들어 쓸 것이 생겨 좋아하니까!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택한 침묵. 그 침묵도 충분히 의미 있다.

사실 다이어리는 매일 뭔가를 써야 하는 공간이 아니다.

가끔은 쓰지 못한 그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드러낸다.

조용히, 조심스럽게, 아무 말 없이.

 

 


 

 

3. 공백을 사랑하는 연습 기록은 원래 완벽할 수 없다.

 

마음이 들쑥날쑥하듯, 다이어리도 고르고 일정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꾸준함보다 지속 가능성을 배워야 한다. 다 쓰지 못해도 괜찮고, 한 줄만 적어도 괜찮고,

며칠 쉬었다가 돌아와도 괜찮다.

 

“어떻게 매일 쓸까?”라는 물음 대신 “어떻게 오래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꿔보자.

 

그 시작은 공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다.

억지로 채우려 하지 말고, 그 자리를 그냥 비워둬도 좋다. 그 공백은 말한다.

 

“이 날은 힘들었지만, 나는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기록을 계속해갈 수 있다.

 


 

 

🌿 마무리: 쓰지 않아도 괜찮았던 날들 다이어리를 채우지 못한 날들.

 

그 시간들은 잊힌 것이 아니라, 잠시 눌러 앉아 있었던 감정들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다이어리를 펼쳤을 때 그 빈 페이지들은 조용히 속삭여줄 것이다.

“괜찮아. 그 날의 너도, 분명 최선을 다하고 있었어.”

 

기록은, 때로는 멈춤으로도 이어진다.

공백도 기록이고, 그것 또한 나의 흔적이다.

그리고 다시 한 줄을 쓰는 순간, 우리는 다시 이어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로.

 

오늘도 살아낸 우리에게 감사의 인사로 마무리해보자!